아침에 일어나 손을 쥐었다 펴려고 하는데, 유독 한 손가락이 구부러진 채 펴지지 않아 당황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반대 손으로 억지로 펴주면 ‘딸깍(Clicking)’ 하는 소리와 함께 총의 방아쇠를 당기듯 튕기며 펴지는 현상.
이것은 손가락 힘줄에 생기는 흔한 질환인 ‘방아쇠 수지(Trigger Finger)’, 의학적 명칭으로는 **’협착성 건초염(Stenosing Tenosynovitis)’**의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진료실을 찾는 환자분들은 처음엔 “자고 일어났더니 손가락이 마비된 줄 알았다”며 공포감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질환은 원인을 정확히 알고 초기에 관리한다면, 수술 없이도 충분히 호전될 수 있는 질환입니다. 오늘은 재활 전문가의 시선으로 방아쇠 수지가 왜 생기는지, 그리고 병원에 가기 전 집에서 할 수 있는 관리법과 주의사항까지 깊이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1. 방아쇠 수지, 도대체 손가락 안에서 무슨 일이?
이 질환을 이해하려면 우리 손가락의 구조를 간단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손가락을 구부리는 힘줄(굴곡건)은 마치 낚싯줄처럼 팔뚝에서 시작해 손가락 끝마디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힘줄이 뼈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터널 같은 구조물이 있는데, 이를 **’활차(Pulley)’**라고 부릅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힘줄이 이 활차 터널을 매끄럽게 통과하며 손가락을 굽히고 폅니다. 하지만 손을 과도하게 많이 사용하여 힘줄에 염증이 생겨 붓거나, 활차 자체가 두꺼워지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부어오른 힘줄(혹은 결절)이 좁아진 터널 입구(주로 A1 활차)에 꽉 끼어버리는 것이죠. 억지로 힘을 주어 이 좁은 구간을 ‘통’ 하고 통과할 때 발생하는 마찰음과 충격이 바로 여러분이 느끼는 ‘딸깍’ 거림과 통증의 실체입니다.
2. 내가 방아쇠 수지일까?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
단순한 손가락 관절염과 혼동하기 쉽지만, 방아쇠 수지는 매우 독특한 임상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 증상 중 2가지 이상 해당한다면 의심해 보셔야 합니다.
- 아침에 가장 심하다 (조조강직): 자고 일어났을 때 손가락이 뻣뻣하고 펴기 힘들다가, 활동을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 부드러워진다. (밤사이 부종이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 마찰음과 걸림 현상: 손가락을 굽히거나 펼 때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거나 ‘딱’ 하는 소리가 난다.
- 손바닥 통증과 결절: 아픈 손가락과 연결된 손바닥 부위(손가락 뿌리 부분)를 눌렀을 때 심한 압통이 느껴지거나, 좁쌀만 한 혹(결절)이 만져진다.
- 엄지, 중지, 약지의 통증: 주로 엄지손가락(Thumb)과 3, 4번째 손가락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한다.
3. 왜 생길까? (원인과 위험군)
과거에는 요리사, 운전기사, 미용사 등 손을 많이 쓰는 직업군에서 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 스마트폰 과사용: 무거운 스마트폰을 새끼손가락으로 받치거나, 엄지로 스크롤을 반복하는 동작은 힘줄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줍니다.
- 골프와 테니스: 그립을 너무 강하게 쥐는 습관(Over-gripping)은 클럽이 손안에서 도는 것을 막으려다 활차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게 됩니다. ‘골프 초보의 질병’이라고도 불립니다.
- 기저 질환 (당뇨, 류머티즘): 특히 당뇨병 환자의 경우 일반인보다 발병률이 훨씬 높고, 수술 후 재발률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혈당 조절이 힘줄의 염증 회복을 더디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여성 호르몬: 폐경기 이후 여성에게서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호르몬 변화로 인한 조직의 부종과 관련이 깊습니다.
4. 재활 전문가가 제안하는 비수술 관리법 4가지
증상이 초기라면(손가락이 걸리긴 하지만 스스로 펼 수 있는 단계), 굳이 주사나 수술을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2~3주간의 집중적인 자가 관리로도 염증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① ‘쥐는 동작’의 절대적 휴식 (Rest & Modification)
가장 기본이자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입니다. 아픈데도 계속 꽉 쥐는 동작을 하면 활차는 점점 더 두꺼워집니다.
- 장바구니를 손가락으로 들지 말고 팔뚝에 걸거나 배낭을 사용하세요.
- 걸레를 비틀어 짜는 동작은 최악입니다.
- 골프나 테니스 등 라켓 운동은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2주 이상 중단해야 합니다.
② 자가 마사지 (Deep Friction Massage)
아픈 손가락의 뿌리 부분(손바닥 쪽)을 만져보면 딱딱하고 아픈 알갱이가 느껴질 것입니다. 그 부위를 반대 손 엄지로 지긋이 누른 상태에서, 힘줄의 주행 방향과 수직 방향(좌우)으로 부드럽게 문질러 주세요.
- 주의: 너무 세게 문지르면 오히려 염증이 심해집니다. 약간 뻐근하면서 시원한 정도로, 하루 5분 정도가 적당합니다. 이는 유착된 조직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③ 부드러운 힘줄 스트레칭
손가락을 뒤로 과도하게 젖히는 스트레칭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안전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아픈 손가락을 포함해 손 전체를 테이블 위에 평평하게 올려놓습니다.
- 반대 손으로 아픈 손가락을 아주 천천히 들어 올립니다. (통증이 없는 범위까지만)
- 10초간 유지하고 내려놓기를 반복합니다.
④ 밤 시간 고정 (Night Splinting)
우리는 잠을 잘 때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고 자는 경향이 있습니다. 밤새 꽉 쥐어진 주먹은 아침의 통증(조조강직)을 유발하는 주범입니다.
- 약국이나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가벼운 보조기 **’손가락 부목(Finger Splint)’**을 착용하고 주무시는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게 펴고 자는 것만으로도 아침 컨디션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5. 병원은 언제 가야 할까? (주사와 수술)
자가 관리로 2주 이상 호전이 없거나, 손가락이 굽혀진 채로 굳어 반대 손으로 펴주지 않으면 펴지지 않는 단계(Locking)라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 약물 치료: 소염진통제(NSAIDs)를 복용하여 염증과 통증을 조절합니다.
- 스테로이드 주사 (뼈주사): 활차 내부에 강력한 항염증제인 스테로이드를 주입합니다. 초기 환자의 경우 60~70% 이상 드라마틱한 효과를 봅니다. 단, 잦은 주사는 힘줄 파열이나 피부 탈색, 지방 위축 등의 부작용이 있으므로 1년에 3회 이상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 수술적 치료 (활차 절개술): 주사 치료에 반응이 없거나 재발이 잦은 경우, 혹은 손가락이 완전히 굳은 경우에는 수술을 고려합니다. 두꺼워진 활차를 터주는 수술로, 최근에는 피부를 아주 조금만 절개하는 ‘최소 침습 수술’이나 ‘하키나이프 시술’ 등을 통해 10분 내외로 간단하게 끝나며 입원 없이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합니다.
6. 꾹 참다가 ‘관절 구축’ 오지 않도록!
진료 현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언젠간 펴지겠지”라고 방치하다가, 관절 자체가 굳어버리는 **’관절 구축(Contracture)’**이 온 상태로 방문하시는 분들입니다. 힘줄의 염증은 잡을 수 있어도, 굳어버린 관절을 다시 유연하게 만드는 데는 몇 배의 시간과 고통스러운 재활 과정이 필요합니다.
손가락이 보내는 ‘딸깍’ 신호는 “이제 좀 쉬게 해줘”라는 힘줄의 비명입니다. 오늘 알려드린 스트레칭과 생활 습관 교정을 통해, 소중한 손가락 건강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특히 당뇨가 있으신 분들은 작은 증상도 가볍게 넘기지 마시고, 초기에 적극적으로 관리하시기를 거듭 당부드립니다.
주의사항 : 이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